여름엔 건강하게 무더위를 이겨낼 공간, 음식, 뷰티 루틴 외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최선을 다해 놀 용기’인데요. 최근 엄마들에게 놀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은 물론, 영감을 불어넣고 삶을 열정적으로 이끌어가도록 응원하는 분이 있습니다. 온라인 기반 미디어이자 커뮤니티인 ‘스티커’의 안성현 대표를 만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TWW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 - 패션 매거진 ‹아레나›, ‹그라치아› 등의 편집장을 거쳐 최근 밀레니얼 엄마 기반의 커뮤니티 플랫폼 스티커를 운영하고 있는 안성현 대표입니다. 열네 살 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해요.
스티커는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나요?
안 - 저는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을 좋아해서 에디터를 업으로 삼았고, 평생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남성지, 여성지, 틴에이저 잡지, 중년 타깃의 럭셔리 매거진 등 다양한 성격의 잡지를 만들었고, ‘질 좋은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면 좋을까?’ 늘 생각해 왔죠. 싱글일 때는 몰랐는데 아이를 낳고 주변에 저와 비슷한 엄마들을 만나다보니 그들에게 좋은 정보를 전하면 보람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는 인류의 미래이고, 이들을 양육하는 엄마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 팬데믹 기간 동안 진공 상태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하게 됐죠. 비대면으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도록 온라인 미디어를 만들고, 엄마들을 끌어 모으고, 서로 영감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든 게 스티커의 시작이었어요.
주로 어떤 콘텐츠를 다루나요?
안 - 엄마들이 타깃인 콘텐츠의 경우 대부분 육아나 살림을 어떻게 잘할지에 포커스를 둬요. 하지만 스티커는 엄마가 얼마나 재미있는 삶을 살고, 돈을 잘 벌고, 딴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둡니다. 엄마가 딴생각을 할수록 아이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집착하는 데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요.(웃음) 물론 아이도 그만큼 행복해지고요. “심심해야 천재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잖아요. 아이들이 여유를 가지고 열린 사고를 하려면 엄마가 놀아야해요.예쁜것보고, 영화를 감상하고, 관심 분야 강좌도 들으면서 자극을 받아 또 다른 내일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하죠. 스티커는 엄마들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전하는 온라인 기반의 미디어(인스타그램 @stickher)와 이들이 만든 유무형 상품을 판매하고 재능을 개발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즘 비즈니스는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할 것 없이 모두 Z세대에 열광하는데 '엄마'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 - Z세대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거나 Z세대에게 초점을 맞춘 마케팅을 하면 브랜드와 협업할 일이 많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겠죠, 당장은. 하지만 콘텐츠 만드는 일을 30년 가까이 했고, 아이도 어느 정도 성장한 상황에서 좀 더 올곧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엄마'라는 타깃은 좋은 정보를 전달해 주고 싶은 감성적 동기 외에 비즈니스적으로도 니치 마켓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선택한 거예요. 출생률이 낮아진다고는 하지만 아이는 계속 태어날 거고, 엄마도 계속 생겨날 거잖아요. 엄마들은 아이를 잘 키우고, 스스로도 반듯하게 살기를 원해요. 지구를 사랑하고, 좋은 물건을 고르고,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어 하죠. 자기 일도 하고 싶고요. 이런 큰 맥락은 100년 후에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길게 본다면 양적 확장보다 질적 깊이를 선택한 거죠. 그리고 저도 엄마니까 잘 굴러가는 커다란 바퀴를 만들고 싶었고요.
스티커는 온라인 플랫폼뿐 아니라 온라인 숍, 오프라인 팝업 등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를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확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 - 엄마들이 딴생각을 하려면 돈을 잘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SNS 미디어가 아니라, 엄마들과 소비자 사이에서 접점이 되어 돈을 '함께' 잘 버는 것이 스티커의 목표이기 때문에 재능 마켓, 팝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거죠. 엄마들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줄여가며 스티커의 일에 동참하는데, 좀 더 부가가치가 높아야 하지 않겠어요?
엄마들을 직접 참여시키고 콘텐츠를 같이 만드는 방식도 흥미로워요.
안 - 선진적 미디어는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첫째는 누가 독자인지, 누가 글을 읽고 정보를 얻는지 정확히 드러나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과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거죠. 잡지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했지만, 내가 쓴 글을 읽는 독자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20명이 넘는 팀원과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만드는데 누가 읽고, 어떤 느낌을 받는지 그 실체가 없는 거죠. 판매율은 부풀릴 때가 많고, 높다고 해도 부록 덕일 때도 있고요. 광고주 피드백이 전부였어요. 일방적 소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스티커는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미디어이다 보니 이런 제 바람이 투영된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인텔렉추얼 형식을 띠는 활동을 하게 됐군요.
안 - 그렇죠. 누군가 ‘글을 쓰고 싶어요’ ‘참여하고 싶어요’라고 하면 스티커는 바로 객원 에디터를 모집해요. 1인 기업가 여러 명이 홍보를 하고 싶은데 창구가 없다고 하면 그들을 모아서 팝업을 열죠. 2년밖에 안 되어 행사를 여러 번 한 것은 아니지만, 팝업에 참여한 엄마들과는 연대감이 깊어지고 피드백이 활발해졌어요. 이것이 스티커라는 브랜드를 탄탄하게 해준다는 믿음이 있고, 제가 직접 펼치는 사업이다 보니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스티커가 만나는 ‘요즘 엄마들’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안 - 그 어느 세대보다 스펙이 화려하더라고요.(웃음) 지적이고 똑똑하고 트렌디해요. 콘텐츠에 따라 취향이 맞는 엄마들이 모여서인지 모르겠지만, 경력이 풍부하고, 일을 계속 하고 싶어 하는 분이 많아요. 지금은 육아 때문에 쉬고 있지만 ‘언젠가는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하고 싶다’는 바람을 모두 가지고 있죠. 예쁜 리빙 제품을 좋아하고, 유기농 식재료로 근사한 요리를 뚝딱 해내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들을 직접 만나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요? 에너지? 영감?
안 - 에너지를 받기보다는 주고 싶어요. 제가 10년 전 아이를 키우면서 하던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더라고요. 여전히 시간이 없고, 여전히 엄마나 주부로서 여러 가지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게 안타깝죠. 그런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서 스티커를 더 열심히 끌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엄마들이 너무 많거든요. 일례로, 지난 팝업 때 협찬받은 ‘OMY’의 컬러링 포스터 몇 장을 색칠해서 매장을 꾸미면 좋을 것 같아 아르바이트 공지를 올렸어요. 정확히 52명의 미대 출신, 혹은 유학파 엄마들이 지원했더라고요. 심지어 모여서 색칠을 하면서 너무 즐거워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니까요! 여전히 세상은 엄마들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아요. 예쁘고 아는 것 많고 재주도 많은데도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커녕,즐겁게 놀 용기도 없다는 게 놀랍죠.
그렇다면 대표님은 어떤 엄마인가요?
안 - 늘 친구 같은 엄마를 꿈꿔요. 우리 집 가훈은 ‘놀고, 놀고, 또 놀고’예요. 저는 어떤 텍스트나 비주얼랭귀지가 사람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가 가훈을 보면서 매일 놀고 또 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좋은 학벌이 행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물론 아이의 성향도 중요한데, 저희 아이는 저처럼 노는걸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성향이었어요. 학원 보내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한적한 외곽으로 이사하고, 숲 유치원에 보내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무조건 친구처럼 놀아줬어요. 다른 도시에서 한 달살이도 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프로그램 없이 자유롭게 놀면서 시간을 보냈죠. 저는 놀이기구도, 스키도 잘 못타지만 아이가 함께 하자고 하면 다 했어요. 서핑도 배웠고요. 책과 몸으로 노는 것에는 정말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혹은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안 - 딱 한 번, 제가 오만하다는 걸 알았을 때요. 육아와 일 둘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 거죠. 엄마가 되는 것과 회사 일, 둘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운 좋게 정말 좋은 시터를 만나 함께 살았고,제가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아이와도 최선을 다해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 남에게 아이가 어떻다는 얘기를 들어도 적당히 덮어두고 지냈던 것 같아요. 빨리 잊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저는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컬렉션 출장길에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분명 수많은 전조가 있었는데도 저 스스로 에고가 강해서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겠죠. 세상은 시스템으로 움직이지만 육아는 그렇지 않잖아요. 정서적 유대감이 필요한데 제가 구멍을 낸 거죠.
그럼에도 다시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나요?
안 - 저는 회사 다니는 동안 조직 생활이 잘 맞고, 팀원들과도 정말 좋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니 일을 서서히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만 곱씹고 있었다면 힘들어서 견디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는 일을 쉬면 온몸에 기운이 없어요. 일하면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스타일이죠. 제가 하는 일이 잘 풀려야 집안일도 할 에너지가 생겨요. 프리랜서라는 게 남의 일 같아서 싫었지만, 육아와 일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으려면 프리랜서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요. ‘어떤 일’이 아니라 일을 ‘한다’에 방점을 두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러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물리적으로 시간 여유가 생기고,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보게 된 거죠. 아이의 학년에 맞춰 사업을 끌고 가고 있는 거예요.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더욱 공감되네요.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엄마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안 - 저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한다’에 원칙을 둬보세요. 특히 일하는 엄마는 일도, 육아도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 엄청 괴로워해요. 자기 때문에 아이가 뒤처지는 것같고,일은 일대로 더 잘할 수 있는데 몰입하지 못해 자존심 상해하죠. 24시간 투잡을 뛰는 셈이니 당연하죠! 지극히 정상이에요. 중요한 것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가지치기를 하는 게 좋아요.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고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아이가 아파서 갑자기 휴가를 써야 할 때 따가운 눈초리를 받거나,승진을 못해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해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로 마음먹었다면 무얼 보고 듣더라도 남과 비교해서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요.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육아와일,이둘을 끝까지 끌고 간다면 결국 잘하는 시기가 오거든요. 대신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야 해요. 아이가 공부를 좀 못하는 것 같다고 일을 선택한 걸 후회해선 안 될 일이죠.